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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초록
添加时间: 2023/5/20 16:05:35 来源: 作者: 点击数:219

한국어 초록

 글은 심훈의 중국 체험과  체험 과정에서의 사상 변화를 탐구하고, 중국 체험을 배경으로  문학 작품의 주제 의식을 깊이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우선,  글은 심훈의 생애에서 중요한 사건을 고비로 하여 생애를 크게 3단계로 나누고 사상 변화의 궤적을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그의 사상적 변화의 3단계  전기는 습작기부터 중국으로 떠나기 직전까지로,  시기에 중대한 3·1운동을 겪으면서 애국심이 고조되어 구국의 길을 찾기 위해 중국으로 향했다. 중기 단계는 중국  도시를 돌며 혁명사업에 참여하고 창작활동을 하는 것으로,  시기에 심훈은 이곳도 혁명의 “산란한 꿈자리 알고 실망한  다시 혁명을 반성하게 됐다. 후반에는 심훈이 귀국한  조국과 혁명에 대한 초심을 지키며 문학·평론·영화 등의 분야에서 노력을 기울이며 민중의 민족 의식을 문학 작품으로 계몽하고 식민통치에 대항했다.

나아가 본고는 주로 비교 문학 형상학에서 북경, 상해  항주에 대한 심훈의 이해를 분석했다.  도시들에 대한 선훈의 인식은 주로 혁명자와 이방인의 관점에서 관찰됐으며, 자연 환경의 관점에서 얻은 인식도 여러 있다. 심훈은 북경의 걸인이 비록 가난하게 살지만 조금이라도 주권을 가진 나라에서  있는 것을 부러워하고, 상해의 화려한 표면 아래 병폐투성이의 혁명이 숨겨져 있는 것을 한심하며, 편안한 항주에서 자신이 애당초 무슨 목적으로 이곳에 왔는지 여러  의심했다. 심훈은 중국 도시를 인식하는 과정에서 중국 도시의 이미지를 조국 조선과 비교하게 마련이다. 타자에 대한 인식에서는 조국혁명의 문제와 문제의 본질, 그리고 민족 정체성에 대한 깊은 반성을 하게 됐다.

선훈은 35년의 짧은 인생 역정에서 적지 않은 가작을 만들어냈고, 중국에서 귀국한   작품도 중국 체험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들 작품에서는 고향을 향한 심훈의 애틋함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가족과 친구, 그리고 조선 민족을 잉태한 삼천리 땅은 언제나 심훈의 마음을 움직인다. 중국에 오기  선훈은 선진적인 학문을 받아들이고 진정한 혁명을 찾아 조국 광복에 기여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실상을 알고 한심해 했다. 조국의 앞날에 대한 걱정도 그의 작품 속에 깊이 새겨졌다. 실망과 걱정 끝에 혁명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해법에 대한 탐구가 이뤄졌다. 심훈은 그의 작품에서도 혁명의 길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열의를 보였다. 결국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조국의 운명에 대한 우려, 성숙해진 혁명의식이 중국 체험을 배경으로  작품의 주제의식을 구성한다.

1. 서론

1.1 연구 목적 의의

본고는 한국 현대 독립운동가이자 망명문인인 심훈의 중국체험과  문학 작품의 주제의식을 밝히고자 한다. 심훈은 1920 중국으로 건너가 1923년까지 북경, 남경, 상해를 거쳐 항주에 머무르면서 독립 운동  문학 활동을 했다. 이러한 중국 체험의 경로와 과정에서 이루어진 중국 인식에 대한 분석을 통해 중국 체험의 문학적 형상화한 표현을 탐구할 것이다. 심훈의 사상 변화의 궤적을 추적한 다음, 중국 체험을 배경으로 창작한 문학 활동에 작품이 어떠한 주제 의식이 드러났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심훈(1901-1936)은, 본명이 “대섭”, 호가 “해풍”이고, 중국에서 망명한 동안 “백랑”과 “훈”이라는 이름을 신문에서 소설을 연재했을 때부터 사용했. 1901년에 서울 노량진에서 심훈이 3남1녀 가운데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고등학교 4학년 독립 운동에 가담한 사건으로 투옥과 이어서 퇴학을 불행하게 당했. 감옥에서 나온 후 중국에 망명하기 시작했으며 북경, 남경, 상해, 항주에 전전하고 나서 항주 지강대학에 입학하게 됐. 그가 가진 풍부한 중국 망명 경험은 귀국 후의 문학 창작에도 심원한 영향을 끼쳤.

중국을 떠나 조선으로 돌아온 심훈은 상해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1930년에 『동방의 애인』이라는 소설을 해 냈다. 이 소설을 어떤 이들이  바치며 혁명을 이루려는 이야기가 가미된 정치적 소설이었으며, 보통의 사랑 이야기와는 차별화됐다. 아쉽게도 일본의 검열에 걸려 완성되지 못하고 말았다. 상해에 대한 심훈의 기대와 실제 상해의 모습 사이의 차이 때문에 심훈은 실망스러웠지만,  경험은 심훈에게 사상적으로 성장할  있는 기회를 제공했. 이후에도 심훈은 사상 계몽과 식민 대항에 관한 소설을 창작하는  힘썼다.

이처럼 심훈은 중국에서 망명하면서 겪은 경험이 그의 창작에  영향을 끼쳤다. 그의 작품들은 중국 도시를 배경으로  것뿐만 아니라, 중국 문화와 사상의 간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말할  있다.

1936년에  35살이던 심훈은 장티푸스로 세상을 떠났다. 비록 일생이 극히 짧았지만, 심훈은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뛰어난 면모와 강인한 기개를 보여주었다. 심훈은 “상록수”에 비유되는 숭고한 인물로 국민들에게 기억된다. 심훈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기여한 공헌은 전 민족의 마음속에 영원히 간직될 것이다.

심훈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많은 실질적인 공헌을 했지만, 문학사적으로 과소평가된 실정이다. 이는 동시대에 활약한 카프 계열의 작가들과의 불화 때문일  있다. 그러나 그의 풍부한 중국 경험과 남긴 수많은 작품들은 한국 현대 문학과 현대사  다양한 측면에서 연구가 필요하다. 특히 동아시아적 시각에서 한국 근대 문학을 다루는 연구가 활발한 지금, 중국과의 관계를 탐구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졌다.

일제의 압박으로 인해 심훈은 올바른 혁명 방법을 찾기 위해 중국으로 망명했다. 중국에서의 경험을 통해 뼈아픈 깊은 자기성찰을 하고 조선민족의 정체성을 재인식한 , 문학 창작을 통해 한국 사회의 병폐 앞으로 나아가야 길을 조선 민중들에게 전달했. 이러한 심훈의 경험을 연구하는 것은 민족의 생존의 위기 속에서 혁명가 개인의 심리와 국가 운명 간의 관계를 살펴보는  의미가 있다.

심훈은 자신의 문학 작품을 통해 민족 독립과 번영한 미래의 모습을 묘사하여 조선 민족의 사상적인 개화와 민족 의식 강화에 기여했다. 중국에서는 심훈이 망명 운동가와 교류하고 혁명 업무를 수행하는 한편 문학 창작도 중단하지 않았. 그러므로 심훈의 중국 체험과 그가 창작한 문학 작품을 연구하는 것은 조선 망명 문인의 문학사와 민족 독립 운동의 동향을 조사하는  매우 중요하다.

심훈의 문학 작품은 중국 현대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즉 중국에서 겪은 독특한 망명 체험이 그의 독특한 작가 의식을 형성하는  영향을 미쳤다. 심훈의 작품에서 중국의 이미지가 드러나는 것은 한중 문학 간의 교류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중국 체험에 영향을 받아 창작된 심훈의 작품은 한중 현대 문학 교류에도 기여할 있다. 그래서 심훈의 중국 체험과 문학 창작을 탐구하는 것은 당시 한중 문학 교류의 특징을 파악할 있는 동시에 동아시아 운명공동체 형성을 촉진하는 도움이 것이다.

따라서 본고는 망명 문인 심훈이 중국에서 어떤 체험을 했는지를 고찰함으로써 중국 체험이 심훈의 사상 전환에 미친 영향과 이러한 영향이 그의 작품에서 어떻게 구현됐는지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구체적인 작품을 분석하여, 심훈이 중국의 여러 도시를 경험하며 민족 정체성을 재인식하고 일본 침략과 민족 혁명에 대한 고찰 등의 내재된 감정을 드러낸다는 점을 파악하고, 그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세계를 문학을 통해 탐구하고자 한다.

2. 심훈의 일생과 그의 사상 전환의 궤적

2.3 후기-초심 지킴(1923-1936)

심훈은 중국에서 2 남짓의 세월 보내고 1923년에 조선으로 돌아갔다. 같은 해 문예에 뜻을 가진 청년들과 신극 연구 단체인 “극문회 조직했. 심훈은 중국의 혁명 현황에 실망하지만 귀국 후에 조선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 혁명과 관련된 문학 작품을 끊임없이 창작하는  열중했다. 그는 연극 창작, 영화 제작 등에 몰두하고 많은 작품을 산출했다. 하지만 일제 검열 탓에 심훈의 창작이  타격을 입게 됐다. 그는 식민주의를 대항하는 진지도 소설 창작으로 옮기고 말았다.

1924 여름에 심훈과 아내 이해영은 결혼 7 만에 이혼했. 이혼의 표면적 이유는 자식이 없다고는 것이었지만 정확한 이유는   없다. 이전에 언급한 대로, 심훈이 중국에서 형편이 순조롭지 않더라도  조국에 있는 이해영에게 편지를 써서 그리운 감정을 드러낸 만큼 그는 이해영에게 대한 진심어린 애정을 가진다는 결론을 내릴 있다. 하지만 실제는 심훈이 이해영과의 조혼에 많이 시달린 것이다.

친동생 심원섭이 청상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충격을 받았다. 그는 ! 惡魔. 仇讐의 早婚아,  손으로 깨뜨련다. 나의 붓이 怨讐를 죽일란다라는 말을 적이 있는데 혹시 이것은 심훈이 자신의 조혼 생활을 후회하는 내면의 감정을 드러낸 것일까 생각한다.

이혼의 이유는 아마 이해영의 친동생 이해승이 친일파인 까닭인지도 모른다. 가장 친한 아내의 형제인 이해승은 심훈과 이데올로기적으로 대립해서 항일 운동을 참가한 심훈과 그의 혁명가 동지에게 있어서 시한폭탄인 존재였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면, 심훈의 입장은 친부에 의해 변화하지 않고 굳건하게 유지되었다는 것을   있다.

1925 조일제이 번안한 「장한몽」이 영화화되면서 심훈은 이수일역으로 출연하게 . 감독과 연줄이 있어서 중도에 그만둔 배우를 대신하여 출연하기는 지만, 심훈이 외모가 뛰어나면서도 역할을 톡톡히  내어 주목받았다. 이후로 그는 영화에 깊은 관심이 가지게 .

1927 심훈은 도일해서 본격적인 영화 수업을 받은  귀국해 영화 「어둠에서 어둠으로」를 제작해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영화가 다룬 식민지 현실에 대한 내용 때문에 말썽을 빚자 「먼동이  때」라는 제목으로 바뀌고 개작했다. 심훈은 작품을 마지막으로 영화 제작을 그만두게 됐다. 이렇게 보면 심훈이 귀국 후에도 새로운 학문에 대한 공부를 끊임없이 이어나가며, 창작을 통해서 일제의 지배에 대한 반항을 이어나갔다.  동시에 심훈이 중국 형명의 형편에 대한 관심을 여전히 가지고 있었다.

1930 1월에 심훈이『삼천리』에 중국의 충홍방에 관한 기사를 게재했. 심훈은 직접 눈으로  정도로 충홍방의 성격과, 유래, 세력범위, 그리고 세력범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며  단체가 사회에 끼친 나쁜 영향의 사례도 상세히 밝혔다. 심훈이 귀국한 이미 7년이 됐는데 아직도 중국의 정치 상황을 자세히 파악할  있을 정도로 국내외의 형명 정세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았으며 사회주의 형명에도 계속해서 매달렸을 것이다.

1930 12 심훈이 안정옥과 재혼했. 안정옥은 스스로 능력이 없다고 평가했지만 여러 시문 잡지에서 법안 제출이나 신흥 학과 공부 등과 관련한 글을 발표한 적이 있었다. 또한, 안정옥은 심훈의 심부름을 맡아 도와주며, 심훈이 『동방의 애인』을 집필하는 영감을 주었다. 안정옥의 존재는 당시 실직 중이던 심훈에게 정신적인 위안이 됐다.

1929 대공황으로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확산되는 배경에서, 일본은 군국주의를 가속화해서 침략 전쟁을 확대하고, 조선인의 민족의식을 말살해 동화시켜야만 조선인을 침략 전쟁에 쉽게 동원할 있다.  결과, 개빡치는 30년대 민족 말살 통치 시기가 시작됐다. 충절성이 한결같이 강한 혁명자들은 일제와 맞서 싸웠다. 무렵 「그날이 오면」이라는 시가 발표되어 조선 민족의 힘을 한데에 모아 일제의 지배로부터 도망치는 호소를 전했다.  시는 앞서 희생할 있는 정신을 나타내며, 조선 민족의 열망을 대변하는 작품으로 자리 잡았.

그날 일제를 물리치고 국가의 국권을 회복하는 날을 의미한다. 광복의 날이 오면 심훈은 기쁠 뿐만 아니라 삼각산과 한강 같은 무생명체도 살아난 것처럼 기뻐할 것이다. 그는 심지어 자신의 가죽을 북으로 만들어서라도 기쁜 소식을 세계에 알릴 것이라고 말했. 그러나 실제로는 그날  아직 현실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상황이다. 심훈은 이미 조국이 상실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여전히 “그날 돌아올 가능성을 희망하고 있었다. 만약 그날 돌아온다면, 심훈은 자신의 목숨까지 바칠 수도 있을 것이라 예상했.  시는 斷腸 二首라는 원래의 제목과 연결되어 있으며, 심훈은 斷腸만큼 그날 와야 한다는 열망을 간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조선 광복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줌으로써, 심훈은 조선 민족을 동원하여 그날 오길 바랐. 심훈은 당시 묵직한 책임감과 무력감을 느끼면서도  시를 통해 그의 울분과 희망을 솔직하게 표현했.

심훈은 민족 독립의 염원이 너무 절박해서, 그날이 오면뿐만 아니라 외에도 항일 의식이 뚜렷한 작품  말살됐. 1930 『동방의 애인』도 『조선일보』에 연재됐다가 일제의 검열로 인해 중단되어 미완성작으로 남게 . 심훈은 일제의 검열 방해에도 불구하고 전투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날카로우면서도 노골적인 창작 법이  다는 것을 깨달으며,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하고 1932 고향인 충청남도 당진으로 낙향해 소설 집필에 전념했.

일제 강점기에 한국 농촌의 소작농은 본토 지주들로부터 착취를 받을 뿐만 아니라, 일본인들에 의한 약탈도 겪었. 이러한 사회적 현상들로 인해 농민들의 생활은 점점 어려워지며 농촌은 폐허가 됐다. 이런 시대적 배경에서 심훈은 농촌의 계몽 사상이 깃든 소설을 창작하는  힘썼다. 1933 장편 소설인 『영원의 미소』, 단편 소설 『황공의 최후』를 개작했. 1934 장편 소설인 『직녀성』을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했으며 1935 장편 소설 『상록수』가 『동아일보』의 창간15주년 기념 장편소설 특별공모에서 당선되어 연재됐. 이러한 소설들은 조선의 비참한 농촌 현실을 사실적으로 반영하면서 농민들의 사상을 표현함으로써 민중의 민족 정신을 일깨우고 저항의식을 키우기 위해 노력했. 가혹한 식민 지배에도 심훈은 조국의 광복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1936 심훈은 『상록수』를 단행본으로 출판하느라고 힘을 쏟던 , 장티푸스에 걸려 얼마 되지 않아 타계했.

귀국한 심훈은 민족 계몽 의식이 담긴 작품들을 꾸준히 창작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일제의 검열로 인해 심훈의 창작이 어쩔  없이 중단되거나 작품이 삭제됐. 하지만 이에도 불구하고 심훈은 포기하지 않았으며, 대신 진지를 전환해 농촌 계몽 의식이 깃든 소설에 몰두했. 이렇게 심훈 사상의  번째 단계는, 과거의 좌절에 지지 않고 민족 독립을 위해 창작을 통해 끊임없이 싸우는 것이었다.

심훈의 사상은 대체로 민족 사상의 계몽과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동경과 믿음——중국 혁명 상황에 대한 실망, 망명자로 처한 처지에 대한 슬픔, 그리고 형평에 대한 반성—— 후에는 민족의 독립을 위해 문학 창작을 통해 끊임없이 싸웠다.

3. 심훈의 중국 체험과 중국 인식

심훈은 고려의 망명객 이라 자처하며, 국가의 광복을 궁극적인 목표로 여러 도시를 돌며 나라의 운명을 구하려 . 이전 장에서는 언급했듯이 심훈이 처음부터 정치적인 목적을 가지고 중국에 것이다. 그래서 정치적인 목적을 감추기 위해 중국을 체험하면서  경로가 복잡해진 것이다. 또한 심훈은 중국에서 사회주의 혁명에 참여하는 운동가들과 연락하며, 정치적인 임무를 비밀리에 수행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다양한 도시를 방문해야 했다.

도시를 제대로 알아보려면, 먼저  도시의 자연환경부터 시작하여 새로운 도시적 특징을 인식하고 이어서 인문환경을 깊이 이해해야 한다. 도시의 지위, 기능, 문화가 시대에 따라 변화하며, 다른 작가들은 그들의 느낌, 감정, 해석에 따라 도시에 대한 다양한 인식을 갖게 된다. 이 장에서는 여러 측면에서 중국에서 갔었던 도시에 대한 심훈의 인식을 다룰 것이다. 도시 이미지, 문화적 특징, 혁명 정세 등의 다양한 측면을 고려하여 논할 것이다.

3.1 북경——혁명 기운 풍기는 고도

북경은 역사, 문화, 정치 분야에서 특이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도시는 중국 전체의 이미지를 어느 정도 대변하며, 이 사실은 조선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원나라 때부터 북경은 계속해서 중국의 수도이며, 외국인 사절들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도시가 됐. 북경은 또한 고려와 조선왕조가 세공을 보냈던 장소이며, 조선왕조에게는 “천자의 도시”라고 불렸다. 그러나 근현대에 이르러서는 세계 정세에 급격한 변화가 생겨 중국이 주목을 받았던 대국에서 제멋대로 짓밟힐 있는 반식민지로 전락하면서 조선인이 북경을 인식하는 시각도 달라졌다.

심훈이 북경에 때는 마침 겨울이었다. 그가 북경에 머문 기간은 한 분기도 채 되지 않았으며,  기간 동안 북경의 기후는 항상 매우 혹독했.

위의 문장에서 보듯이 심훈은 북경에 대한 초보적인 인식으로  지역의 기후가 “軟骨에 견디기 어려운” 정도로 너무나 혹독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북경은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리며 밤이 길어서 매우 춥다. 그러나 그는 혁명과 관련된 때문에 선배들과 교류하면서 북경에 대한 인식은 한층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됐고, 이국 땅에 대한 인식도 역설적으로 조국과 자아에 대한 인식을 더욱 심화했다.

「北京의 乞人」에는 시의 배경을 설명하는 부기가 포함되어 있다. “世紀末 孟冬 憔悴한 行色으로 正陽門 차참에 내리니 걸개의  에워싸며  푼의 동패를 빌거늘 달리는 황포차상에서 수행을 읊다 부기이다. 심훈은 거지와의 만남을 통해 동전을 달라고 요청하는 거지와의 대화에서 마음속에서 감탄을 표현했. 걸인이 선불 멎은 짐승과 같은 자기에게 돈을 달라고 것이 아이러니적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을 표현했. “쫓겨오는  行色”, “曠野를 헤매한다는 표현을 보면, 심훈이 북경으로 떠났을  상황 복잡하고 긴박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병영에서 울리는 나팔 소리와 판매상인들의 외침은 , 심훈에게 마음껏 소리 질러 보고 살아왔음을 의미한. 그러나 심훈은 나라의 주권을 상실한 분노가 심금을 울리는데, 직설적이고 시원하게 털어놓을  없는 처지에 있었다. 이렇게 보면  시는 심훈 자신의 감정을 우회적으로 표편하는 출구로 해석될  있다. 조국 현실에 대한 심한 슬픔은 이국과 비교함으로써 더욱 강조된다. 

정양문 아래에 있는 채색기는 오래되면서 많이 퇴색됐지만 여전히 나뿌리고 있었다. 과거에는 얼마나 눈부신 수도였는지, 지금은 백성들이 살기 위해 고통을 겪으며 뛰어다니던 모습이 심훈의 눈에 보였다. 국기마저도 원래 빛나는 색상을 잃어버렸다. 심훈은 걸인들에게 연민을 느끼면서도 자신의 민족에 대한 슬픔도 더욱더 심각해졌다. 나라를 잃은 슬픔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북경의 쇠락과 걸인에 대한 연민을 통해 나라를 잃은 현실과 주권 국가에 있는 걸인보다 못한 자기에 대한 연민을 드러냈다.

그러나 걸인들이 헐벗고 굶주렸어도  깃발 그늘에서 자랄  으며 중국이 여전히  위엄을 유지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심훈은 걸인보다 부유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걸인들이 주권을 조금이나마 갖고 있는 나라에서 있다는 것을 얼마나 부러워할지 모른다. 국가의 국권 상실의 현실이 더 선명하게 드러나며, 식민지 청년으로서의 민족적 열패감이 더욱 강렬하게 부각된다. 게다가 자그마한 골목에서 야채를 파는 상인이더라도 마음껏 소리 질러보고 살아왔 만큼 버젓하게 살아가 모습에 부러움을 표현하고 있다.  시는 심훈이 종속국의 백성으로 살아왔다가 마침내 식민지의 백성으로 전락되고  동포의 초라하고 불쌍한 모습에 대한 재인식이 담겨 있다.

신문화운동 전후 북경에서는 선진적인 지식인들이 많이 나타나며, 북경대학을 중심으로 새로운 사상과 문화를 선전하고 사람들을 계몽했. 북경뿐만 아니라 전체 중국에서 사회 변화를 주도하는 지식인들은 근현대 중국의 정치, 문화, 사상   분야에서 대체할 없는 역할을 하고 있다. 조선 지식인들이 그들을 생각하는 이미지도 특이한데, 심훈의 글에서 북경대학과 북경대학의 학생들에 대한 인식은 다른 면이 있다.

 글에서 심훈이 북경대학과 북경대학 학생들을 모두 부정적으로 묘사했. 심훈이 기술한 내용의 사실 여부를 일단 차치하며, 그는 초보적인 생각으로 극문학을 전공하기 위해 북경대학에 입학했지만, 실제로는 북경대학에서 실망했다고 . 심훈은 희곡 관련 학과에서는 1주일에 1시간쯤만 수업이 있고, 학생들의 관심도나 열의도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심훈의 북경대학과 북대학생에 대한 인식은 실제와 크게 다르다. 지난 장에서도 언급된 것처럼, 북경대학의 교수진은 대부분 신문화운동을 주도하는 대표적 인물이다. 북대학생 총장인 채원배도 “思想自由,兼容並包”라는 교훈을 채택하고 북경대학이 신문화운동의 중심이 되어 중국 사회의 발전에 큰 기여를 . 우수한 교수진과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가진 북경대학은 교육과 학생의 면모가 결코 생기 없는 것이 아니다. 심훈이 이렇게 말한 것은 자신의 정치적 목적과 상해로 떠나는 진짜 이유를 숨기기 위해서였을 수도 있다. 이로써 심훈의 북경에 대한 정확한 견해는 이 글과 정반대로, 거기에서 혁명 인물이 배출되고, 혁명 정세가 생기발랄하며, 현대화 풍조가 성장한 것으로 역설적으로 드러났다.

북경은 중국의 문화 중심지로서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며, 여전히 전통 인력거와 전통 골목  구식 문화가 보존되고 있다. 이 고도에서는 혁명 운동이 일어나고 있어 새로운 사상과 문화가 선보이는 반면, 과거의 문화와 전통이 여전히 존재해 “()” “()” 혼재하고 있다. 심훈은 이 곳에서 중국의 문화와 혁명 정세에 대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북경의 상황과 비교해서 조선의 상황을 더욱 깊이 인식하게 됐. 심훈이 북경을 떠나 상해로 간 이유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상해가 당시 혁명의 중심지인 그의 상해에 대한 인식과 관련이 있음을 짐작한다.

3.2 상해——散亂한 革命의 꿈자리

중국의 현대 문명을 이야기할 , 대개 “동양의 파리, “마도 불리는 모던한 도시  떠올리곤 한다. 이곳은 각국의 조계지와 현대 문명이 융합되어 있어 매우 신선한 느낌을 준다. 5·4운동 후기에는 애국 혁명 운동의 중심이  옮겨가게 됐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도 1919 에서 수립되면서 혁명당파들이 줄줄이 세워졌고, 조선의 망명 혁명가들도  건너와 사회주의 혁명의 길을 모색하고 있었다.

1919 북경에서 일어난 5·4운동 이후에는 운동의 중심이 상해로 옮겨졌. 5·4운동의 영향을 받아 1920 8월에 상해 사회주의 청년단이 결성됐고 청년 학생들이 星期評論』, 覺悟』, 新靑 급진적인 매체를 발간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상해는 사상 개화와 혁명의 도시로 변모하고 있었다.

조선의 독립운동가들도 상해를 중심으로  벗고 나섰다. 1920 5월에는 이동휘를 중심으로 상해파 공산당이 창당됐고, 여운형에 따르면 조완구, 신채호, 김두봉  유명한 인사들도 당원으로 참여했다. 1921 5월에는 상해파에서 “전한 공산당 대표회 통해 고려공산당으로 개편됐. 상해파 고려공산당과 중국· 일본의 공산주의자들이 함께 “동방총국 조직해 이들에게 조직 자금을 지원. 이와 관련하여 오스기 사카에, 사카이 도시히코, 콘도 에이조, 천두슈 등이 있었다. 조선은 식민지에 빠졌으나 애국 혁명 조직이 다른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혁명 운동도 벌이기도 . 이처럼 1920년대 초반 상해는 심훈에게 지향하는 가장 이상적이고 희망찬 혁명 성지가 .

심훈이 상해에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에 대한 자료는 없지만 그가 나중에 귀국해서 적은 「박군의 얼굴」은 상해에서 박군과 마주쳤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소설 『동방의 애인』도 상해와 상해의 혁명운동을 배경으로 작성됐다. 주인공은 3·1운동에 가담했다가 구속되어 감옥에서 풀려난  진정한 혁명의 길을 찾으려고 상해로 건너왔다. 소설 주인공은 현대화된 상해, 그리고  화려한 겉모습 속에 숨겨진 자본의 퇴락을 마주쳤다. 소설 속에서 상해는 활력과 암울의 이중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심훈의 상해 인식에 대해 충분히 대변한다고   있다.

주인공이 상해에 오기 전에 상해를 너무 이상적으로 생각했. 실제로 보면서 그가 상상했던 상해의 매력이 사라졌으며, 상상했던 모습과 실제 상해의 모습 사이에 괴리감을 느끼면서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상해에 오기 전에 옥고를 치렀던 주인공은 식민지 조선의 혁명 정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마음속에서 상해를 유토피아로 상상하면서, 이곳에서 식민지의 현실을 극복하고, 선진적인 학문을 배우며, 억울하고 불평한 것들도 해결할  있다고 상상했다. 그러나 막상 상해에  보니, 상상했 것은  거품뿐이었고 생각만큼 신비롭지 않았다. 또한 진정한 혁명의 길을 찾기 위한 목적도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생가이 그들을 더욱 괴롭혔.

상해의  소설 동방의 애인 삽입된 시로 타락하고 답답한 상해의 모습 전체적으로는 묘사한다. 상해의 밤은 고요하고 걷는 골목도 우중충하다. 이러한 배경은 음침하고 억압적인 분위기 만든다. 특히 “四馬路 五馬路 골목 골목 술집과 윤락업소, 호객들이 줄지어 서서 기방이 넘쳐나는 곳으로, 사람을 동경할 만한 것은 없이 오히려 절망적이고 어둡다. 이곳에 와서도 심훈은 극심한 좌절감에 시달리며 잔을 기울이고 “한숨 “통곡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심훈이 동경했 상해는 이제 조국의 광복 이루 성지보다는 “散亂 革命 꿈자리  곳이었다.

상해는 명실상부한 국제 대도시로, 현대화와 자본주의의 기운이 넘쳐나고 있다. 그렇지만 조선과 마찬가지로 상해에서도 부패와 혼란이 매일 벌어지고 있어 진정한 혁명의 길을 찾기가 어려운 같다. 이러한 광경에 대해 심훈은 실망스러움을 금치 못했. 상해의 표면적인 화려함과 현대화가 퇴락한 상해의 탈일 뿐이며, 상해의 혁명은 여전히 산란하고, 이곳도  다른 식민지에 불과하다. 

사회주의를 지향 심훈에게 있어서 1920년대  상해의 모습은 도저히 이상적인 성지로 인식될 없었다. 상해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독립운동 내부에서 갈등이 심했으며, 상해파와 이르쿠츠크파 사이에서 노선 투쟁을 벌인 사회주의 운동의 분파주의가 극단적인 상황에 이르렀다. 또한 제국주의적 근대의 모순으로 가득찬 상해의 모습은 심훈을 더욱 실망시켰.

조선에서 상해로 이주한 혁명자들은 상해에 감춰 어둠과 모순을 직시하며, 왜곡된 현실을 해결하는 대안을 찾으려 썼다. 또한, 상해의 근대성과 국제성을 직접적으로 경험하면서 긍정적인 인식을 얻었으며, 이와 동시에 그들은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며 향후의 방향을 모색. 이들은 상해라는 타자를 조선의 현실을 비추어보는 거울로 인식하고, 이를 통해 식민지 조선의 낙후된 현실을 비판했. 이를 통해 혁명자들은 식민지 조선을 해방하고 진정한 주체성을 실현하기 위한 방향을 찾으려 애썼다.  과정은 다른 혁명자들과 마찬가지로 심훈도 겪어야  과정이다.  상해의 실제 모습을 직시하며, 이를 거울로 삼아 식민지 조선의 진정한 독립을 위해 되새기며 반성해야 .

주인공 김동렬과 강세정은 조선인 사이에서 벌어지는 파벌 싸움에  토론한 대화이다. 상해는 혁명의 성지이지만 조선인 내부에서도 파벌 싸움이 일어나고 있으며 혁명이 혼란스러운 상태에 빠져 있기 때문에 동렬을 당혹스럽게 만든. 여기 동렬의 목소리를 빌려 심훈이 가공적인 민족주의 파벌 투쟁의 허구성을 비판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새로운 이란 분파주의를 극복하고 통일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며, 이후에는 독립운동과 무산 계급과의 연계를 통해 사회주의 혁명을 같이 걸어가는 것이다. 상해가 완벽한 혁명의 도시가 아니며 내부적인 갈등과 추악함이 그대로 존재하지만, 조국 광복의 최종 목표 위해서는 현실을 인식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고 심훈이 깨달았다. 이처럼 심훈은 상해가 최초의 동경에서  후의 성찰 인식의 이중성을 갖게 . 또한 타자인 상해의 혁명 현실을 거울로 삼아 국내 혁명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본질을 파악할  . 

3.3 항주——마음의 쉼터

예로부터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소주와 항주가 있다 찬사는 항주가 받아왔다. 항주는 강남의 도시 가운데 꼽힐 정도로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다. 지리적 위치도 우월하고 많은 문인들이 이곳에 매료되어 . 나라가 수도를 복경으로 옮긴   나라에 오는 조선 사절이 강남을 다녀간 적이 드물어 조선의 문인들은 중국 강남에 대해 끝없는 상상을 하게 . 중국에서  3년도  머물렀지만, 심훈은 항주에 2 넘게 머물면서 항주를 가장 많이 체험했다. 심훈이 창작한 「항주 유기(杭州遊記) 연작시 14편에서 항주에 대한 인식과 감정적 성향을 엿볼  있다.

제이의 고향으로 항주를 일컬었는데 심훈이 항주에 대한 특별하고 두터운 강정을 직접적으로 토로했다. 항주는 많은 유람지가 있어서 심훈이 항상 다양한 유람지에 방문하곤 했다. 항주 시절에서 이동녕, 이시영을 비롯하여 엄항섭, 염온동, 정진국 등과 교류하며, 심훈이 더 할 나위 없이 자유롭고 여유로운 삶을 살았다.

그러나 상해에서  시와 달리, 항주 시절에 시는 망명객으로서의 설움과 향수, 아름다운 풍물에서 느꼈던 감동, 그리고 민족의 정체성에 대한 깊은 이해  개인적인 감정과 경험들이 돋보이게 드러났다. 심훈은 상해에서 겪은 정치적인 좌절과 절망으로 인해 항주에 가게 됐으며, 이러한 경험이 그의 시의 감정적인 색채에 변화를 가져왔다. 그의 다른 시에 나타난 감정적인 변화는 상해 혁명 현실에 느꼈던 실망과 좌절에 대한 성찰과 비판으로 이해할  .

심훈은 항주에서 유람지가 많거니와 경치도 아름답다는 감탄을 금치 못했. 그는 선박, 연꽃, 연꽃을 따는 아가씨, 가랑비  생생하고 달콤한 사물들을 그려낸 전원 산수화 같은 풍경을 느꼈다. 저녁 무렵에는 , 나귀, 나귀를 채찍질하는 이방인, 종소리  시간에 쫓기지 않는 유유자적이면서도 조금 처량한 분위기를 묘사했다. 이런 고요하고 아름다운 항주에서 심훈은 과거의 정치적 좌절을 성찰하며 분위기를 전환할 수 있다. 마음은 안정과 휴식을 취하면서도 망향객으로서의 향수와 조국을 구하는 역사적 책임감은 은은하게 남아있었다.

「항주 유기」 연작시는  편마다 항주의 특이한 풍물을 묘사한다. 상해가 현대화된 국제 도시라면 항주는 무릉도원이라고도 과언이 아니다.  시는 달콤한 풍경을 담고 있지만, 수련에서 이미 향수와 설움이라는 중심 사상을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2연에 東海물과 白頭山 원문이 東海水兮白頭山兮至於流竭磨儘”로 됐는데 식민 통치에 신음하는 조국이 불쌍하게 생각한다. 더구나 동무를 얼싸 안고서 느껴느껴우는 동지적 연대감으로 지금의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강한 염원을 나타난. 3연에 다시 전고를 쓰는데 赤壁賦 소식(苏轼) 친구들이 적벽에서 유람하면서 심정은 상쾌함에서, 것을 슬퍼함으로, 결국은 정신적 해탈을 받음으로 전환됐다. 심훈의 심리 상태도 소식(苏轼)비슷해서 과거의 경험을 슬퍼하면서 현실을 해결하지 못해서 결국 羽化而 歸鄕하고 싶어하며, 만약 조국에서 새로운 방향을 찾을 수 있는지 모른다.

당나라 시기에 고려 왕의 넷째 아들인 의천 바다를 건너와 항주에 출가했던 인연으로, 그 이름을 고려사라고 받았다. 심훈이 고려 태자에게 “무슨 道를 닦았 직접적인 질문을 하면서, 실제는 심훈 자신의 현황과 심리를 비췄다. 심훈은 다른 사람이 무엇을 하기 위해 항주에 왔는지 모른다며 자신이 도대체 무엇을 위해 항주에 머물고 있는지 되묻는 것이었다. “그래도  집인 양해     찾았네라는 말과 같이 상해의 혼선된 상황에서의 모습이 심훈에게 깊은 회의를 가져오고, 심훈이 두 번 세 번도  상황을 극복하려고 했지만 좌절당하고 말았다. 그 동시에 고려사 같은 심훈의 반문 해부를 통해 자신의 조국을 구하는 포부를 잊지 않고, 새로운 길을 찾으려고 표출했다.

항성의 에서 나그네의 근심이 숨김없이 그대로 드러나 .  깊어진 항주의 밤저녁처럼 훈의 심경도 점점 암울해졌다. 날밤을 새우며 혼자서 떠돌아다니는 이방인으로의 고독과 내적 갈등은 吳姬의 즐거움과 대조되어 더욱 부각된. “뉘라서 나그네 근심을 올올이 엮어주 의문에서 심훈은 자신의 방황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갈망이 역설적으로 표현되어 그의 문제의식이 드러난다. 이렇게 심훈은 내면의 세계를 솔직하게 토로함으로써 중국도 조선과 다름없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의 대한 반성을 교묘히 드러내고 있다.

黃昏”, “”, “漁火”, 그리고 돛대 어부는 일을 마치고 평온하게 돌아가는 조화로운 화면을 그려낸다. 그러나 이와는 대조적으로 “호궁소리 조용함 깨뜨리는 요소이다. 「錢塘江畔에서」의 호궁소리 「七絃琴」의 曲調 타다 멈추고 형식은 다르지만 비슷한 효과를 내며, 비참하고 애처로운 소리는 심훈에게 현실 좌절과 억울함 그리고 이국땅에서 느껴지는 향수를 떠올리게 한다.

「樓外樓」에서 술을 마시고 싶어서 가슴  타는 불을  보려라는 문장이 등장하며, 「錢塘江上에서」에서 나그네의 베갯머리 라는 표현이 나옴으로써 심훈이 조국에 대한 그리움과 한숨인 것을 암시한다. 다시 말하면 휘몰아치는 향수를 느끼고 있지만, 이를 해소할  있는 방법없으며 심훈이 오히려 가거라”, “보이지도 말고……꿈속에 오지도 았으면 얼마나 좋겠다고 생각했. 보아하니 심훈은 항주에 멀쩡하게 보낼 있어도 조국의 형편과 자신의 역사적 책임을 안심할  없었다. 짙은 향수가 심훈의 정서를 어지럽히면서도 첫사랑처럼 달콤하다. 역시 이 달콤한 향수는 심훈에게 따뜻함과 앞길을 나아가는 원동력을 주었다.

이와 같이 「항주유기」는 심훈이 중국의 혁명에 대해 실망과 사회주의 운동  분파 세력에 대해 환멸감을 느꼈으나, 항주는 심훈에게 자유롭게 사고하고 반성할 있는 공간을 제공하면서 명미한 경치가 그의 마음을 안정시켜주었다. 그러나 심훈은 이미 2 전에 입학한 지강대학과 관련된 작품이나 일기는 찾을 길이 없다. 이것은 심훈이 항주에 방문한 것이 정치적인 이유일 가능성도 있고, 지강대학이 심훈에게 영향을 미친 것이 확실하다. 심훈은 여행을 통해 인식을  깊게 하면서도 실망과 향수를 느끼고, 독립 운동가들과 함께 모여 교류하면서 견문을 넓히고 사상적으로 성숙해졌다. 그래서 항주가 심훈에게 성장하고 반성하는 집과 같은 존재가 .

4. 중국을 배경으로 창작한 작품의 주제의식

중국을 배경으로 창작된 심훈의 작품으로 1921년에 「겨울밤에 내리는 비」, 「기적(汽笛), 「뻐꾹새가 운다」, 「나의 가장 친한 유혁식(亨植) (君) 보고」, 1922년에 「돌아가지이다」, 「항주유기」 그리고 1930년에 소설인 『동방의 애인』이 있다.  『동방의 애인』은 심훈이 중국이 아니라 조선에서 기억 속의 상해를 배경으로 사회주의 혁명을 다룬 작품이다.  작품들은 특히 시에서는 항상 조국을 생각하며 가족이나 친구를 그리워하며 혁명 인식을 밝히며, 심훈의 슬픔이 곳곳에서 발견될 있는데 이는 그의 중국 체험과   없는 관계가 있다.  장에서 작품들을 주제별로 분석하고자 한다.

4.1 이국에서 더욱 깊어지는 향수

심훈이 처음 중국에 도착한 것은 망명으로 인한 것이었다. 그는 국내에서 애국운동에 참가다가 타격을 받아 원한과 정치적 포부가 가득  마음으로 중국으로 도피. 그때 그는 아내와 결혼한  3년도  되지 않았고, 나이도 스물 살밖에 되지 않았. 중국에서 매서운 겨울을 견뎌내면서 고향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로 인한 눈물도 많았다. 그러나 중국에서 다행히도 따뜻한 마음을 가진 선배나 친구들을 만나게 됐다. 그들은 심훈과 같이한 모표를 가지고 사귀는 과정에는 심훈에게 굉장한 영향을 가져왔으며 심훈은 흔히 시로써 친구에 대한 그리움을 전달하는 일도 있었다.

이시는 가장 추운 1월의 겨울에 적혀 있었는데 찬비도 마음을 차갑게 하며 심훈의 한없는 향수를 표출했. 1, 2연에서 시간은 밤비를 듣는 것으로 인해 발상이 튀어나오는 현재다. 3연에서 지나간 일을 회상하는 과거에 현재가 소급된다. 4연에서 다시 현실에 돌아오며 시간의 전환이 주목을 받을 만하다. 시의 서두에서 이날 밤에 내리는 찬비는 번민 정서의 스위치를 켜는 장치로 작용한 듯하다. “뒤숭숭”, “이상스러운”, “어렴풋이그리고 “힘없이  전체에서 어둠침침하고 쓸쓸한 기조를 다진다. 심훈은 겨울 밤에 내리는 비를 “ 아닌 으로 지적하며 밤비가 그의 추억과 그리움을 건드리는 것에 분하게 성토했. 애인과 웃고 떠들었던  토막을 떠올리고 꿈에라도 친한 친구와 만났으련마는 도저히 못한 것은 심훈에게 극도의 괴로움을 가져왔다. 이제 혈혈단신으로 찬비가 내리는 처량한 밤에 심훈의 향수가 극대화됐.

짧은 시지만, 심훈의 방황과 막막한 심정이 집약되어 . “깊은 , “캄캄한 하늘에 기적 소리가 길게 우는”라는 문장은 북적거리는 화면을 그려내고 있었다. “”는 혹시 심훈이 중국에서 사귀는 혁명 사업에 종사하는 친구일지도 모른다. 수많은 차들이 지나가는 황홀속에 심훈과 친구는 모처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이별이 다가오는 것에 몹시 서운해했. “임의 ”이라는 것은 조국의 꿈을 꾸는 것을 의미한다. 조국을 “”이리 친절하게 부르며, 꿈이 끝나지 않기를 바랐으므로, 심훈이 조국에 대한 그리움과 걱정이 매우 강한 것을 짐작할  있다.

 시는 타향에서 심훈과 친구가 이별한 , 심훈이 혼자 남아 친구를 그리워하고 섭섭하다는 속마음을 나타내고 있다. 처음에는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서 감격을 느끼는 기쁨을 표출했지만,  전체에서는 유형식 군이 떠난 상실감이 느껴진. 유형식 군을 부르고, “가거라! 가거라!” 같은 반복적인 어구를 사용하여 실속과 정반대되는 말을 내뱉기를 통해 심훈의 작별의 허구와 아쉬움이 역설된.  그립던 얼굴 유형식뿐만 아니라 더구나 “정다운 고국”, “애인 같은 대상도 포함된다. 다시 말하면 여기 심훈이 그리워하는 대상이 지기 유형식 군이면서 조국인 존재이다. 심훈은 이제 “준령을 넘고 대양을 건너야만 고국 도달할  있는 상황인데, 친구 자기가 고향을 생각나게 하는 존재이다. 그래서 그의 얼굴뿐만 아니라 “입고 싶은  나라의  모양이니, “애처로운 그림자까지도 심훈에게는 강렬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시의 뒷부분에 “움지기지 못하는 그대의  통해 유형식 군의 떠남을 죽음과 관련지어 암시했. 데다가 심훈은 마주 잡던 손을 내밀어달라고 청하다가 급기야 가거라!”라고 부탁하고 말았다. 이렇게 만나자는 부탁과 이별의 서러움을 반복함으로써 심훈 비애를 극대화한다.

4.2 앞길에 대한 근심

심훈은 조국의 미래에 대한 우려를 안고 중국으로 건너갔다. 북경에서  달간 혁명 선배들과 교류한  자신의 정치적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계속해서 상해로 향했다.  과정에서 혁명의 길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면서도, 상해에서의 혁명 국면에 실망할 때도 심훈은 항상 조국의 운명을 걱정했다. 심훈은 분파 세력이 대국을 고려하지 않고 각자의 세력권을 다투고 있음을 알게 되면서 이를 한심하게 생각했고, 이로 인해 조국의 앞날을 더욱 안타깝게 생각했다.

심훈이 북경을 떠나 상해를 향하는 도중, 남경을 거쳐 짧은 시간 머물며  시가 있다.  시는 심훈이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에 함께 동봉한 작품이다.  시는 심훈과 뻐꾹새 사이의 물음과 대답을 통해 심훈의 내적인 고민을 전달했. 그 중의 아내보다는 조국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이국 땅에서 망명하고 정처 없는 심훈에게 편지를 받는 것은 힘들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병들어 있는 것은 조국이 아직 남에게 짓밟히고 조국의 인민이 비인간적 생활을 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심훈이 고국을 으로 간절히 일컬어 그의 모든 진심과 고민을 털어놓았다. 중국에   불과  달밖에 되지 않아도 선훈이  조국을 그토록 걱정하고 있었으니, 조국을 식민지에서 구해내려는 그의 간절한 염원이 엿보인다.

시의 첫머리에 시인이 추억에 젖고 과거에 돌아가는 강렬한 염원이 담겨 있다. 어머니, 한아버지, 할머니, 누나  가족 구성원과의 특별한 기억을 늘어놓듯이 . 특히 어루만지던 엄마의 젖가슴에 안기고 싶습니다, 품기고 싶습니다라는 고백은 어렸을 때에 대한 그리움, 어머니가 형상화된 향수 정서,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염원이 시구에 담겨 있다. 누나 함께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를 듣던 것은 평화로운 과거를 통해 대조적으로 현재의 고독을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이다.

 시는1922년에 쓰여졌는데  당시 심훈이 항주 지강대학에 재학 중이었다. 이전에 「항주유기」를 분석한 바와 같이 심훈은 상해의 혁명 정세에 지쳐 항주에서 독립 운동가들과 교류하는 것이 그의 위로가 . 항주는 좋은 곳이지만, 본래의 고국을 잊을  없으며, 특히 병든 조국을 더욱 걱정하게 만든다. 실현되기에는 아직 멀리 떨어져 있는 초기의 정치적 임무와 자신이  항주에 왔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었던 적도 있다. 조국의 운명이 걱정되는 반면에 자신은 한적한 환경에 놓여 있는 대조는 심훈을 안심시키지 못했다. 그리하여 심훈은 “거짓말을 식히고도 얼굴도 붉히지 말라는 세상 돌아가고 싶다는 솔직한 생각을 표현했다. 심훈은 혹시라도  “알뜰이도 더러운 세상 조국에 위해 제때 기여할까 싶어서 지강대학을 졸업하기 전에도 지급하게 조선에 돌아간다고 추측한다.

4.3 연애와 얽히는 혁명 인식

『동방의 애인』은 3.1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김동렬과 박진이라는  청년이 상해로 탈출해서 한참 모색을 걸쳐 국제공산당에 가입해 성장하면서,  도시에서 강세정과 배영숙이라는 여자와 각각 연애를 맺는 이야기를 서술한다.  소설은 정직하고 포부를 품는 그들과 같은 청년이 있다면 조선 광복이 가능할 것임을 보여준다.  소설은 주인공의 입을 빌려, 혁명하는 중에 존재하는 문제에 대한 심훈의 한심함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결단도 나타낸다. 이리하여 일제 강점기에 발행된 『동방의 애인』은 강한 정치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심훈은 소설에서 주인공들이 진정한 형명자로 성장한 이야기를 진술함으로써 자신의 형명 의식이 성숙해 가는 과정을 우회적으로 표현한다.

위에서 살펴본 대로,  당시 상해는 동아시아 혁명의 중심지로 자리 잡고 있었다. 작품 속에서 옥살이를 겪고 나온 김동렬과 박진은 아무 근거도 없이 가득  열정과 믿음만으로 상해로 향해 떠났.

문장은 조선의 젊은이들이 상해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에 관한 것이다. 그들은 상해를 직접 경험하지 않았지만, 상상만으로  도시는 희망찬 공간으로 믿고, 달려가기만 하면 어떤 문제든 해결할 있고, 어떤 추악한 현상이든 물리칠 있는 것으로 상해를 지나치게 미화했. 믿어보지 않았었던가라는 과거 시제는 젊은이들이 상해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과거의 상황에서 그들은 상해를 믿음직하지 않게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인식이 바꾸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상해에서 살면서 상해에 대한 인식은 다시 변화할 것이다.

주인공인 김동렬과 박진은 상해에 도착한 불과 만에 도시의 진정한 모습을 알아채고 나서 약간 석연치 않은 느낌을 표출한다. 처음에는 김동렬과 박진은 상해에 왔는데 앞길이 막막하고 지도해 사람도 없어서, 다만 매일 고루거각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낸 뿐이다. 이제는 그들은 상해가 예상했던 신비롭지 않다고 감탄하고, 그보다는 조선 사람의 생활 양상과 혁명 흐름에 관심을 가지며 앞으로의 방향을 찾아 나갔.

김동렬과 박진은 상해에서 불란서 조계 하비로에서 조선 사람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보강리에서 생활했다. 이곳은 주로 독립 운동가들의 집거지로, 주인공들이 애연하는 장소도 여기에 있었다. 이곳에 정착한 것은 뜻밖에 미결감에서 같이 있었던 동지인 한윤식 덕분인 것이다. 한윤식을 통해 식주인을 정할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앞길을 지도해 주는 선생님 x씨와 연결시켜 주었다. 이로부터 김동렬과 강세정, 그리고 박진과 배영숙은 서서히 연인 관계를 형성하며 혁명 운동의 업무를 시작하고 국제공산주의자로 성장했다. 결국 그들의 혁명 사상이 성숙하고 연애의 열매도 맺어 냈다.

김동렬은 지성이 뛰어나고 침착하며 면밀하고  있는 청년이다. 강세정이 상해에 오기 전까지도 김동렬은 연애에 대해 엄숙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반면, 강세정은 지나날의 約束을 履行하기 위해 當身의 뒤를 따른다는 것보다도 저는  땅의 이슬을 받고 자라난  사람의 여자로서 마땅히 밟아야  길을 찾기 위해 그곳으로 가겠습니다.”라며 상해에 오게  것이다. 강세정은 이렇게 말았지만 이것은 오직 동렬을 찾기 위한 핑계뿐이었으며, 아무도 상의하지 않고 홀어머니마저 속여 상해로 떠났. 강세정은 연애에 대해 간단하게 생각하기도 하고, 전체적인 상황을 고려하지 않기도 한다. 그들의 연애는 어려움을 겪어 전개됐지만, 두 사람이 국제공산주의자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당내 업무도 수행했다.

김동렬과 강세정은 국내에 있었을 서로 애정을 가지고 있었고, 운동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누며, 두터운 우정으로 연결 사이이다. 강세정이 상해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김동렬은 격렬한 사상 투쟁을 겪었다.

김동렬은 초심을 잃지 않겠다며 혁명 사업을 선도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다른 동지들의 느낌을 고려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또한 연애는 혁명에 방해가   있으므로 경계해야 한다고 자신에게 반복적으로 말했다. 그러나 강세정과의 강한 감정 때문에 김동렬은 계속해서 자신에게 경고하게 됐다. 결국은 그는 굳은 마음을 먹었으나 정작 강세정이 상해에 나타나자 김동렬은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다가가게 됐다.

불란서공원 내에 위치한 부성한 사이의 연못가에서 김동렬은 강세정과 함께 상해 혁명의 현황을 소개하는 대화를 나누었다. 이어지는 대화 속에서 김동렬은 둘이 로맨틱한 풍경화 속에 들어 있는 달콤한 느낌이 한편 강세정도 몸이 김동렬에게 다가앉았다.  사람이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혁명 동지로서의 감정이 나타난다.

김동렬은 혁명 조직 내에서 민족주의를 핑계로 인해 분열이 일어나는 것이 혁명에 대한 의혹이라고 생각했. 그는 상해에    달이 되어 혁명 정세를 제대로 파악하며, 혁명 운동 세력의 분파주의를 극복하고 통일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길을 모색할 준비가 됐다. 이를 위해 김동렬은 다음 단계로, 무산계급을 해방하는 사회주의 혁명을 지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여기까지 김동렬의 계획과 굳은 의지는 이미 보여주고 있다.

끊임없는 논의 끝에, 이제 김동렬과 박진은 혁명 운동의 현황에 대해 더 깊은 이해를 가졌다. 조선에서 진행 중인 운동은 식민지 조선과 혁명 운동의 근본적인 문제를 파악하고 나서 진행된 것이 아니라, 일단 혁명적 열정으로 시작한 것이다. 이 근본적 문제란 조선 인민이 왜 비인간의 대우를 받고 왜 굶주리고 헐벗는지에 대한 것이다. 이러한 원인을 역사적으로 고찰하고 반성할 여유를 가지지 못해서 적을 대항할 힘이 미약한 것을 그들은 깨달았다. 무산계급운동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굳은 의지와 세밀한 조직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김동렬, 박진, 그리고 강세정은 x씨가 이끄는 파벌에 가입하고 그들의 성향을 맞게 x씨의 지도를 받았다.

어느 강세정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홀어머니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마냥 울었다. 이에 김동렬은 당원으로 센티멘털한 감정이 금물이고 그들보다 비참한 사람이 있다고 강세정을 위로해주었. 서로 공감하며 동병상련을 나누던 ,  사람이 꽁꽁 껴안고 있는 모습이 우연히 x씨에게 보였다. 이때, 김동렬은 자신의 모든 진정을 털어놓았.

김동렬과 강세정은 서로 사랑하지 않는 날이 없지만 위대한 혁명을 위해 참을 수밖에 없고, 속해서 경계를 지켜왔다. 김동렬은 민족 “계급 차원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껴안을  없는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다. 그들의 인내와 희생할 각오는 현실의 잔혹함과 혁명의 잔혹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주권이 없는 나라의 인민으로서 인권은 가지지 않으며, 혁명자로서 혁명 이외에 다른 것을 생각할 자격이 없다는 혹독한 사실이다. 소설 서언에서 우리 민족과 같은 계급에 처한 남녀노소가 사랑에 겨워 껴안고 몸부림칠만한 새로운 공통된 애인이라는 심훈의 말처럼, 조선인으로서 남을 사랑하기보다는 존엄성조차 없다. “공통된 애인에서 조선인을 몽땅 합쳐서 정체성을 일깨우고 식민지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힘을 모으는 염원을 담고 있다.

김동렬과 강세정의 결혼 첫날 , 강세정이 고향의 홀어머니를 떠올리며 슬퍼할 때 김동렬은 위로의 말을 건넸다. 김동렬은 혁명에 대한 각오는 이제 정점에 도달했음을 있다. 고향을 떠나는 사람이 사실 헤아릴 없는데 기왕 입당하게  이상 혁명을 위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어야 한다. 더구나 참아 왔던 그들의 사랑은 이제 그들의 소원대로 이루어 완벽한 결말을 맺으니, 김동렬이 이제 혁명 사업에 몰두할 수 있게 됐다. 김동렬이 강세정을 진정한 혁명자로 성장시키고자 했으며, 결국 강세정도 김동렬의 기대에 부응하여 그의 계획에 동참하게 .

김동렬과 반대로 박진은 겉으로 보기에는 덤벙대는 듯하나 정열적이고 걱실석실하고 정의감이 굳센 용감한 청년이다. 처음에서 그는 연애에 대한 올바른 관념과 혁명 사업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각오도 없었다.

박진은 이미 결혼한 아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호르몬만에 의해 변태만치 마음에 드는 여자 뒤를 따라다닌다. 박진이 배영숙에 마음을 끌었음은 분명하지만, 그가 그것이 사랑인지 아닌지에 대해 갈등하고 고민하는 모습을 종종   있다. 연애를 고민하는데도 그가 감옥에서 석방된  넓은 무대를 찾자!라고 벼른 포부는 이미 알쏭달쏭하게 됐다. 박진의 혁명 의식과 이념이 아직 아주 강렬하지 못한 것을 밝힌다.

단락에서 박진이 혁명 사업에서 업무 능력과 사상 각오를 갖추고 성장한 것이 상세하게 표현됐. 배영숙은 아직 입당하지 못해서 박진과 연애도   없는 상황이다. 이것은 박진에게 석연치 않은 느낌을 주었지만, 그는  아쉬움을 동력으로 삼아 더욱 열심히 공부하고 혁명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또한, 박진은 배영숙을 합격한 공산자로 전환시키는 데도 힘썼다. 박진과 만난 이후 배영숙은 동지들의 영향으로 사상이 많이 바뀌어 당의 회합에도 참예하고, 많은 단력을 쌓아 본격적인 혁명자로 성장했.

김동렬, 박진, 그리고 강세정 셋은 본격적인 혁명 사업을 전개하기 위해 상해 지계에서 집을 빌려 비밀 근거지를 만들었다. 세정은 그곳에서 무산계급운동에 관한 기사를수집하고 세계 약소 민족에 대한 형편을 분석하여 때로는 지도를 직접 작성하기도 하며, 다양한 혁명 사업을 진행했다. 그들은 언제나 먹을 것을 걱정할 틈이 없이 열심히 일을 진행했다.  공간에서   두터운 동지로서 함께 공부하고 일하며 성장해 갔다.

글은 3 , 김동렬과 세정은 상해에 뿌리를 내리며 계속해서 공부하면서 당내 업무를 맡아 나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들의 꾸준한 노력 덕분에 당의 사업은 조선 국내에서도 세력이 확산되고 새로운 당원을 끌어들인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 한편 박진은 군사 학교에서 전교 학생을 실력이 뛰어나고 인정받아 영관으로 입관하게 되어 영광스러운 졸업을 이룩했.

이렇게 심훈은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그가 혁명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바꾸게 되었고, 어떤 성과를 이뤘는지를 나타냈다. 그의 인식 과정은 역시 현실의 벽에 부딪혀 실망하고 새로운 길을 찾는 염원으로 시작하여, 결국 신념을 확고히 하며 성숙해가는 과정을 거쳤다. 김동렬과 박진은 상해라는 낯선 도시에서 점점 혁명 운동에 대한 인식이 깊이 있게 하면서, 애인과의 복잡한 감정을 자제하며 혁명 운동에 몰두함으로써, 결국 사람이 모두 본격적인 혁명자로 성장하게 .

5. 결론

본고는 독립운동가이자 작가인 심훈과 그의 작품을 연구 대상으로 하여, 심훈의 혁명 운동 사업과 중국에서 겪은 경험  이를 통해 겪는 사상 변화를 탐구했.  개인에 대한 연구를 통해 당시 혁명 운동의  측면에 대해  깊이 이해할  있으며, 중한 문학 교류에 대한 연구에도 일정한 의의가 있다.

 글은 주로 비교문학 형상학을 연구 방법으로 사용하고 텍스트 정독을 통해 본고의 연구 결과를 다음과 같이 얻었다.

우선, 심훈의 생애를 정리했으며, 사회 환경과 심훈이 참가한 사회 활동 등에서 그의 사상적 변화 과정을 탐구했다. 유학 세가의 영향을 받아 심훈은 문학적 소양이 뛰어났다. 그는 당시의 식민 문화 정책에 반항하고 애국 독립 운동에 참가한 것으로 보니 그의 강한 애국심을 나타낸 것을 있다. 심훈은 선진적인 지식을 배우고 올바른 혁명의 길을 찾으려고 중국으로 건너갔다. 중국 혁명의 실상을 파악한  심훈의 사상은 동경에서 실망으로 바뀌었다가 한동안 반성했다가 다시 일어섰다. 귀국 후에서 별세 직전까지 민중의 사상 계몽과 식민지배에 저항하기 위한 투쟁이 끊이지 않았다.

 다음으로 심훈의 작품에서 심훈이 방문했던 중국 도시에 대한 인식을 분석했다. 북경은 심훈에게는 수도 특유의 정취가 풍기는 오래된 도시로 보였다. 5·4운동의 발원지로서 북경, 특히 북경대학은 인문적 정취와 혁명 정신이 두드러졌다. 상해는 북경과 달리 명실상부한 국제 대도시이며 혁명의 중심지로 부상되고 있었다. 그러나  도시의 눈부신 표면 아래에 자본주의의 폐해가 감춰지고 있으며 상해도 실제 혁명의 꿈자리 것을 심훈은 깨달았다. 항주는 심훈이 중국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던 도시이며, 심훈에게 2 고향이라고도 불렸다. 이곳은 산고수청해 지상의 천국으로 불리울 정도로 아름답다. 심훈의 『항주 유기』를 보면, 심훈이 항주에서 항상 과거의 혁명 경험을 사고하고 반성하기 때문에 항주는 또한 심훈에게 성장시키는 공간을 제공하는 존재이다.

마지막으로 심훈의 중국 체험을 배경으로 창작한 문학 작품의 주제의식 대해 분석했다. 이러한 작품들은 도합 7편이 있다. 텍스트를 자세히 읽기를 통해 이들 작품에서 조국과 친우에 대한 그리움, 조국의 현황과 미래에 대한 걱정, 그리고 자신의 혁명적 의식의 성숙이라는 주제 의식이 담겨 있다.

요컨대, 심훈은 평생 굳건한 애국심을 유지했다. 그의  생애 과정 중에 혁명운동에 참가하고, 감옥살이하고, 중국에서 망명하고, 끊임없이 창작한 적이 있다. 그의 사상은 이러한 평범하지 않은 체험 속에서 끊임없이 성숙해졌음을   있다. 심훈은 35년밖에 살며 그를 연구하는 사람도 드물다. 그렇지만 심훈처럼 변변찮은 사람으로는 국가 대의를 위해 노력하고 열정을 바쳤던 인물은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등장해왔다. 따라서 그의 존재의 의미를 발굴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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