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시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관점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 중요한 하나는 분석적 관점이다. 시를 분석함에 있어 흔히 서정시, 서사시 또는 순수시, 참여시라는 말들로 크게 구분하여 말한다. 때로는 이런 분석이 시에 중점은 두기보다 시인의 경향이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여 거론되어지곤 하였다. 물론 시를 쓴 시인의 생각이 시에 반영되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르겠으나, 작품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보다 작가의 경향을 염두에 둔 평이라 여겨진다. 그러기에 시를 이루고 있는 많은 요소들이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서 의미를 만들고 있는지 파악하여, 하나의 시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특히 무언가를 하나의 집단으로 무리 짓는 분류에서는 더욱 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본고에서는 한용운의 [님의 침목]과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를 비교*분석 하고자 한다. [님의 침묵]이 갖는 문화사적 의의를 일찍이 홍이섭 교수님은 반식민지의 정신이 투철하면서도 문학으로서의 향기와 미들 갖춘 제품이라는 데서 찾는 바 있으나,(1)확실히 [님의 침목]은 조국에의 열정을 시의 형식 승화시킨 민족문화사상 불멸의 위치를 차지하는 걸작으로 평가된 어야 마땅할 것이다. 서정시, 저항 시인, 향토적인 성향을 지닌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시인이라고 하면 한용운을 꼽을 수 있다. 그만큼 한용운은 우리에게 친근한 소재로 자연스럽게 우리가 공감할 수/수, 김지하, 한용운 등도 꼽을 수 있지만 – 신동엽 역시 빠질 수 없는 시인이다.(2)
신동엽의 시는 온화하고 막힘 없는 유유함이 흐르며 따뜻한 정이 흐른다. 당신의 흘린 피로 생명력을 얻은 그 진달래는 우리의 산하이여 우리 민족의 세습 정서인 것이다.
그리운 그의 모습 다시 찾을 수 없어도
울고 간 그의 영혼
들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산에 언덕에](3)
신동엽이 바라보는 자연은 자연 자체로 끝이 아니다. 그 속에 영혼이 있고 민족이 살아 숨쉬고 민족혼이 내재한다 “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화사한 그의 꽃/산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그리운 그의 노래 다시 들을 수 없어도/맑은 그 숨결/글에 숲 속에 살아가지어이” 선열들의 혼이 우리의 강산에서 우리와 함께 존재하고 있음을 인정한다. 그래서 시인은 “그리운 그의 모습 다시 찾을 수 없어도/울고 간 그의 영혼/글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라고 마치 주문을 외의 듯한 태도를 취한다. 자연을 응답이 가능한 대상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의 자연은 인간적인 가치를 지닌 자연이며 우리 조상의 영혼이 살아 숨쉬는 공간이다. 그것도 고통받은 인간의 영혼이 내재하는 자연이나 다시 태어남의 육화로서의 자연관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변치 않은 통시적 동일성을 획득하고 있다. 한용운은 자신이 조국에 사랑하는 마음을 잘 표현하는 저항시인, 신동엽은 참여 시인이라는 극과 극의 위치에 있는 것처럼 평가하고 인식되어져 왔다. 그래서 한용운은 무던히도 자연지향적이고 자신의 감정만을 표현해 내어 상대적으로 예술성이 있는 것으로 인식되고 , 신동엽은 상대적인 의미고 사회 참여적인 시인으로 인식되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본고에서 두 시인을 비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까지 않겠는가 라는 의문이 생길 것이다. 물론 비교는 가능하다. 이는 그들이 지니는 조국 사랑과 사회 참여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비교의 기반으로 공통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 논문의 목적은 1930년대와 1960년대를 대표하는 두 시인, 한용운과 신동엽의 작품 중에서 ’국가’를 소재로 하거나 국가관을 엿볼 수 있는 시를 집중적으로 비교 분석함 으로써 두 시인 젊은 날 가졌던 사회주의 이념이 그 후의 정치 상황과 세월 흐름 속에서 변화 되었는지 변화 되었으면 어떻게, 얼마나 변화 되었는지를 구명하는 것이다.
제1장 한용운과 저항시
1.1 한용운
만해 한용운(1897~1944)이 생존했던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엽에 이르는 65년의 기간은 우리민족 전레없는 일대 수난기였다. 그는 일찍부터 한학을 수학하여 전통적인 유교사상에 젖어 있었으나, 현실을 외면하고 산수를 찾아 유유자적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왜곡된 현실을 과정하려는 끈질긴 욕구에 불타고 있었다. 그가 일찍부터 현실적인 투쟁에 참여하게 된 것도 실로 이러한 현실의 불합리성을 개혁하려는 끈질긴 욕구 때문이었다. 처음에 그가 참가한 투쟁은 논란의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1895년 을미의병과 동학운동이 아닌가 보여진다.4) 이타주의 계기로 그는 불교에 귀의하였으며, 이후 가상적인 전환이 없이 불교의 입장에 서서 고달픈 중생구제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그의 현실개조의 끈질긴 욕구는 하여금 한적한 사원속에만 머물게 하지는 않았다. 전통적인 불교의 모순를 개조하기 위하여 그는 [조선불교유신론]을 썼으며, 국가와 민족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불교도 현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활동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장하였다. 이리하여 그는 중생을 구제하는 불교정신에 입각하여 구국운동의 선봉에 서서 활동하였던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구국은 도탄에서 신음하는 중생구제의 수단 바로 그것이었다. 여기에 大禅师로더의 만행과 시인이며 위대한 鬪土로서의 만해를 이해할 수 없는 근본적인 정신이 있는 것이다.5)
한 인간의 출신지,고향,신분 등은 생애사 및 인간 이해에 매우 중요하다. 지금껏 만해 한용운 생애사에서도 이 점은 중요시 되었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입산, 출가 이전에 대해서는 묻고, 대답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로 되어 있다. 그렇지만 만해는 불교계를 뛰어 넘었던 인물이기에 그의 출신, 고향에서의 활동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이런 점과 관련하여 만행의 부친, 만해에게 유학적 지식을 전수해준 유교 지식인의 실체, 만해와 접속한 유학자 그룹에 대한 관심은 당연한 것이다. 이에 대해서 만해의 자전적인 회고가 참고된다.
나의 고향은 충남 洪州였다. 只今은 世代가 변하였고 고을 이름조차 洪城으로 변하였으나 그때 나는 어린 소년의 몸으로 先亲 나의 일생운명을 결정할 만한 중요한 교훈을 받았섰으니, 그는 국가 사회를 위하여 一身을 바치는 옛날 의인들의 行践이었다. 그래서 매양 先亲은 스스로 그러한 종료의 书册을 보시다가도 무슨 感怀가 계신지 朝夕으로 나를 불러다 세우고 옛사람의 자전을 가르쳐 주었다. 이런 마음에도 史上에 빛나는 그분들의 气概와 사상을 崇拜하는 마음이 생기어 어떻게 하면 나도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 되어 보나 하는 것을 늘 생각하여 왔다.6)
의에 회고는 나오듯이 만해의 부친에게서 배운 내용은 만해의 유년 및 청년 시절의 화두가 되었음이 분명하다. 만해는 그를”나의 일생 운명을 결정할 만한 중요한 교훈”으로 인식하였다. 만해가 체득한 것은 국가와 사회를 위하여 헌신한 의인. 검사의 행적 및 전기이었다. 그래서 만해의 가슴에는 의인, 검사들의 기개와 사상을 숭배하는 마음이 생겼다. 이는 만해의 매년, 청년시절의 지향이었음이 분명했다. 입상 이전의 만해의 정신적인 표상이었던 것이다. 이는 저절로 민족의식의 잉태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민주적인 일대 수난기에 살았던 만해의 투쟁방식은 물론 그대로 오늘날 우리의 현실에 적용 될 수는 없다. 그러나 그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었던 민족에 대한 끈질긴 열정은 불멸의 지표로서 민족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민족분열의 뼈 아픈 상황에 처해 있는 오늘날 우리가 만해의 확고한 민족의식으로부터 많은 교실을 얻을 수 있다고 확신하는 이유의 하나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1.2 [님의 침묵] 시 내용 분석
님만 님이 아니라 기른 곳은 다 님이다. 중생이 석가의 님이라면 철학은 칸트의 님이다. 蔷薇花의이 봄비라면 맛치니의 님은 이태리다. 님은 내가 사랑할 뿐만 아니라 나를 사랑하느니라. >>>>>>나는 저문 벌판에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대는 어린 양이 기루어서 이 시를 쓴다.7)
만해에게 있어서 님은 바로 애인이요, 불교의 전리 그 자체이며, 한민족 전체----이 나라 안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 즉 중생 마로 그것이었다.8) 이러한 점을 文艺评论家 威武雄은 한용운의 가장 위대한 점으로 지적하여 다음과 같이 论及한 바 있었다.
……한용운은 근대 한국어 낳은 가장 위대한 인물중의 하나다. 순화된 민족의 언어로 민족의 念愿을 노래한 시에 있어서나, 불교의 혁신운동에 있어서나, 혹은 일본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를 반대하는 투쟁에 있어서나 그는 항상 식을 줄 모르는 용기와 참된 양심을 대련하였다. ……9)
[님의 침묵]이 갖는 또 하나의 의미는 그것이 한국적 감정의 구조나 한국 사회의 구조응대한 투철한 인식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투철을 통해서 탄식과 절망과 이별을 하나의 미학으로 승화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10) 그의 민족정신이 관념의 산물이 아니라 현실과 밀접한 연관 위에서 형성된 산물이라는 평가도 이런 점에서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현실적 감정을 만해도 [님의 침묵]가운데서 솔직하게 吐露한 바 있었다.
……나는 서정시인이 되기에는 너무도 소질이 없나봐요. [즐거움]이니 [슬픔]이니 [사랑]이니 그런 것은 쓰기 싫어요. 당신의 얼굴과 소리와 걸음걸이와를 그대로 쓰고 싶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집과 침대와 꽃밭에 있는 작은 돌도 쓰겠읍니다.11)
만해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도탄에서 헤매는 민족의 슬픔과 비원을 직접 체험하고, 그것을 보편적 개념으로 승화시키는 것이었다. 그의 시가 일상적인 생활감정만을 표현하는 단순한 서정시에 그치지 않고 차원이 높은 민족시의 경지에까지 도달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원인도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사실 그의 시는 언제나 불교에서 강조하는 자아의 개념에 의하여 짙게 채색되었다. 송옥은 이러한 자아를 가리켜[개별적 자아의 참된 바탕인 보편적 자아]라고 불렀다.12) 따라서 [님의 침묵]에 나타난 사랑은 감각적인 사랑이 아니라 形相은 곧자아라는 초월적이고 사랑, 비감각적 사랑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만해는 초월적인 사랑의 분야에만 安住하지는 않았다. 초월적이고 상태가 타인을 성장하지 않을 때는 죽음이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그는 알 고 있었기 때문이다. 13) 그는 추상적인 민족에게 충성을 바치기 보다는 현실의 민족을 의해 생명을 바치려 하였다. 그는 [황금의 노래로 그물치기] 보다는 차라리 [무덤 위에 피묻은 기대를 세우]라고 외쳤던 것이다.
1.3 저항방법
만해 미학의 최고 경지라 할 수 있는 [님의 침묵]에 대해 그 본질을 파악하고 그것이 어떻게 역설적으로 쓰이는가를 직접 작품을 통해서 이런 저항방법을 잘 알 수 있다. 만해의 시에서는 사랑이 이별을 통해서 더욱 미화괴고 있으며 이별은 결국 희망을 포함하고 있다.
(I)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는 옛 맹서는 차단찬 티끌이 되야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은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 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 멀었습니다.
(II) 사랑도 사랑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조란 가십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III)그러나 이별을 쓸 데 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 부었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 하얐습니다.
제 국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님의 침묵]전편-
(I) 에서는 님이 가 버렸다는 객관적 사실로부터 출발하여 님은 가 버렸고 차마 떨치지 못할 것을 떨치고 가 버렸다는 고통과 절망을 점차 심화시키고 있다. 맹세는 티끌이 되고 님은 나의 운명조차도 바꾸어 놓았으며 귀먹고 눈멀게 해놓고는 사라져버렸음을 나타냈다.
(II) 난 가장 고통과 절망에 빠져 슬픔이 폭발하지만 이 슬픔은 비탄돼 절망으로 그치지 않고 기대와 희망을 갖게 해 줌으로써 슬픔이 된다.
(III) 에서는 이러한 역설이 다시 만날 것을 믿는 ‘会者定离 去者必反 ’의 논리를 성립시키므로 님이 가버린 분명한 현실에도 불구속하고 자기가 보내지 아니 했다고 확실하며 말한다. 즉, 나는 마음의 님이 떠나지 않은 이상 님은 가버렸다고 할 수 없고 님과 나와의 관계는 유지될 수 있다. 그러므로 님과 나와의 사랑은 침묵을 넘어서 제 국조를 못 이기는 노래가 되는 것이다.
앞에서 침묵의 역설이 만해의 시를 극단적으로 복고 가게 되지만 이러한 것은 그 시대의 상황에서는 당연하다고 했다. 즉, 님이 주시는 한숨과 눈물은 아름다운 생의 예술이라는 그의 인생과 예술에 대한 태도의 정당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해는 결코 시인 되기를 원하지 않았으며 독자들에게 시가 읽혀지는 것조차도 바리지 않았다. 이러한 것은 그의 시집[님의 침묵]말미의 [독자에게]에서
독자여 나는 시인으로 여러분의 앞에 보이는 것을 부끄러워합니다……
-[독자에게]-
라고 밝히고 있다.
그는 문화적인 개성과 개념을 지니고 자신위주의 주체적인 작품창작을 해 왔는데 “저는 예술가가 되는 날이 있다면 구구하게 남의 발자취를 따라 가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라고 그의 소설 [후희]에서 주인공 ‘한경’을 통해서 명백히 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실제 생활에서 그랬던 것처럼 만해는 시인으로서도 줄기차게 일제와 맞서는 자세를 취한 저항시인었다.”14) 그래서 “[님의 침묵]그것은 역시 레지스탕스 철저한 성전이라”15)할 수 있는 것이다.
, SPAN>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 시를 속에는 분노와 저항의[피기운]이 시려 있다. 고로 만해의 시가 극단적으로 가는 님의 부재를 부정하고 침묵에서 존재를 찾기 위한 그 시대의 상황에 대한 저항의식에 뿌리박고 있으므로 저항시인의 실선은 당연한 것이 된다.
제2장 신동엽과 저항시
2.1 시인 소개
신동엽의 전기는 윤재걸16)과 성민엽17)에 의해 작성되었다. 특히 성민엽은 그의 전기가 문학사회학적 입장에서 파악코저 시도하였는바 신동엽에 연구에는 참고가 될 것으로 평가된다.
세계는 자아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막강하고 자아는 이런 막강한 세계의 횡포를 일반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라는, 자아와 세계 사이의 엄청난 불균형을 인식하는데서 비가적 세계관이 탄생한다. 그리고 이러한 비가적 세계관이 바로 전통적 정서인 한(恨)있다 광복의 빛이 한순간으로 뿐 진정한 민족주의가 좌절된 당대의 정치적 현실에 대한 신동엽의 좌절감은 한의 서정으로 표현된다.
그는 한의 시인이고 한반도(韩半岛)를 한반도(恨半岛)왜 인식했다.19) 그의 시는 한을 기본 정서로 하고 있으며 한을 진양조의 정서처럼 애잔하게, 또는 제삼자의 입장에서 거리를 확보하고 담담하게 중모리의 정서로, 때로는 거리를 유보한 격정적인 휘모리의 정서로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시인의 시정신이 당시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갈등을 일으키게 되면 위정자 또는 위정자의 편에 서 있는 사람들로모터 문제시되어 다루어진다. 현실적 어려움 속에서 당당히 자신이 색깔로 시대정신을 외친 신동엽이 이러한 시인들 속에 포함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는 일제 말기로부터 이 세상과 결별하기까지 절대 빈곤의 세계를 체험했으며 6.25와 민족 분단 그리고 4.19,5.16등의 우리 현대사의 절곡을 두루 체험한 불행한 시대의 시인이었다. “인간이기보다 민족, 민족이기보다는 놀리어 고생한다 속절없이 죽어 간 이름 없는 젊은 피”20)로 삶을 추구한 신동엽은 1960년대의 대표적 민족주의 시인이자 민중시인이다.
그의 삶은 식민지시대, 해방 및 해방공간, 6.25,4.19,5.16 등의 한국사회의 굵직굵직한 정치, 사회적 사건과 함께 진행되었다.
신동엽 전기 중 아직은 명쾌하고 해명되지 않았지만 6.25 발발사 그가 민청 선전부장이란 직함으로 부역을 한 사실의 자세한 내역과 그후의 삶이 그사건과 연관되어 짐지워준 명암은 앞으로 신동엽 문학의 총체적 이해를 가능케 하는 필수적인 일이라 판단된다.
앞에서 민족문학의 개념이란 당대 삶의 구체적인 삶의 목표와 필연적으로 연계 변증법적으로 지양된다는 점을 살펴 보았는데 50년대와 60년대에 상황에서 가장 긴박한 민족적 과제는 통일조국의 실현을 자기과제로 택한 작품을 우선은 민족문학의 개념에 가장 근접한 작품이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앞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그의 작품활동은 59년도에서 69년도까지 약 10여년 지속되였으며 그의 전작품, 즉 시 71편과 서사시,그정시,시극,오페라타 5편, 평론 및 산문 18편18)은 그러한 과제와 힘겨운 싸움을 수행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2.2 [껍데기 가라] 시 내용 분석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금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구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레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기로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신동엽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를 살펴보면,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껍데기는 가라’의 반복이다. 1.2.4연 첫행에, 동일한 위치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과 3연은 첫행이 아닌 둘째행에서 나타나고 있다. 결국 1.2.3.4연에서 모두 나타나고 있다.
‘껍데기는 가라’는 2보격이면서도 독립적이고 완결된 발화로서 군더더기 없이 핵심적 내용만 간결히 전달하고 있다. 간결성과 더불어 ‘가라’라는 명령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명령이 시 전체에 속 반복하여 나타나기 때문이다. 3연을 살펴보면, ‘아사달 아사녀가/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부끄럼 빛내며/맞절할지니’가 눈에 들어온다. ‘중립의 초례청’ 앞에서 혼례하는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혼례의 장소는 ‘중립의 초례청’이다. 여기서 ‘중립’이라는 말에 주목해야 한다. 어는 것이 더욱 높지도 낮지도 않은 ‘중립’의 의미를 내밀어 이들은 맞절 즉 결합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껍데기는 가라’라는 명령을 하는 정당성이 3연이라는 앞의 이야기를 상기할 필요가 제기된다. 이런 상기를 통해 ‘아사달 아사녀’의 성격이 어느 세계에 해당되는지 알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이들은 1연에서 ‘알맹이’, 2연에서 ‘아우성’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감학동은 “아사녀는 아사달과 함께 신공엽의 초기시에 자주 나오는 시어이거도 하다. 이땅에 사는 민중들의 진정한 모습을 지칭하는 것이다. 아사달과 아사녀의 모습은 그의 작품 속에서 볼 때 우리들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외세에 물들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순수한 한국인의 모습은 간직하고 있는 민중이 아사달과 아산과 되는 셈이다”라고 언급하였다. 순수함을 표현하기 위한 ‘아사달 아사녀’는 과거에 존재하는 인물들이다. ‘아사달 아사녀’ 뿐만 아니라 ‘동학년의 곰나루의 아우성’도 과거에 존재한다. 즉 알맹이에 해당되는 것들은 주로 과거에서 찾고 있다. 이런 과거지향은 도피적인 모습이 아니라, 과거의 순수함을 통하여 나은 미래를 위한 추구라고 보여진다. 결국 과거의 순수함으로 현재의 껍데기가 가기를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인의 생각은 제4연에 이르러서는 시간적 개념에 머무르지 않고 공간적 개념으로 변화한다. ‘한라에서 백두까지/향기로운 흙가슴만 남고/그, 모오든 쇠붙이 가라’라고 말한다. 물론 ‘한라에서 백두까지’라면 한반도 전체를 말함이다. 전국토에 ‘흙가슴만 남고/쇠붙이는 가라’라고 하고 있다. 이는 1.2연에서 보았다. ‘~남고’, ‘~살고’, ‘~가라’와 유사한 구조를 보여진다. 즉 ‘껍데기’는 ‘쇠붙이’로, ‘알맹이’는 ‘흙가슴’인 갓이다. 그리고 ‘껍데기’는 ‘쇠붙이’로 구체적으로 제시된다.
위에와 같이 반복으로 거부적인 명령어의 사용에 따른 딱딱함과 거부감은 자연스럽게 읽어 낼 수 있도록 하고 있음을 더불어 살펴볼 수 있다.
2.3 저항방법
[껍데기는 가라]는 흔히 참여시의 수작으로 인정되는 작품으로 감정이 격정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신동엽의 이 시시는 우리가 오늘날 참여시에서 바라는 최소한 모든 것이 들어 있다. 강인한 참여 의식이 깔려 있고, 시적 경제를 할 줄 아는 기술이 숨어 있고, 세계적 발언을 할 줄 아는 지성이 숨쉬고 있고 죽음의 음악이 올리고 있다.21)
감수영이 신동엽의 [아니오]와 [껍데기는 가라]를 예를 들어 논하면서 바람직한 참여시의 요건을 제시하고 있는 대목이다. 실제의 시를 두고하는 비평인 만큼 더욱 구체적인 지적을 하고 있는 바 신동엽에 진가를 확고하게 인정하여 ‘강인한 참여 의식’ ‘시적 경제를 할 줄 아는’ ‘세계적 발언을 할 줄 아는 지성’등의 용어를 동원 신동엽의 참여 시인으로서의 위치를 자리매김한다. 다분히 신화 비평적이는 하지만 소월의 민요조와 이육사의 절규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껍데기는 가라/4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그 어조가 자못 명령조이다. 이 명령은 위협의 성격을 갖고 있다. 민중이 대상이 되었다면, 진양조의 애절한 가락이나 담담하면서도 온화한 그러면서도 도도한 가락의 중모리로 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의 대상자는 반민족적인 어떤 대상이다. 신동엽은 이러한 대상을 향해서 거칠고 격렬한 목소리로 껍데기는 가라고 외친다. 껍데기와 쇠붙이로 명명된 외세와 봉건적인 것들에 대해, 그리고 지배계급에 대해 허구성과 폭력을 저격하는 민주주의 이데올로기의 실천이며 절규이다. “중립의 초례청”에서 아사달과 아사녀로 명명된 남과 북이 혼례로 치른다. 이것은 분단 극복이라는 민족의 간절한 염원을 상징하고 있다. 아 사건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 동학 농민 전쟁과 4.19혁명의 민중 봉기이다. 신동엽은 민중 봉기의 대혁명을 통해서 민족 분단 극복의 과제를 해결하려 한 것이다. “껍데기는 가라/한라에서 백두까지/향그로운 흙가슴만 남고/그, 모여든 쇠붙이는 가라.” 민족의 정기를 흐리게 하는 온갖 요소들에게 그들의 퇴진을 요구한다. 그리고 민족 정기를 맑게 하고 힘차게 할 빛을 하늘을 우러러 강구한다. 신동엽을 불러 낸 것은 하늘에다. 경자민주혁명 때나 기미 만세 혁명 때 또 갑오 농민 전쟁 때도 잠시 빛잤던 그 하늘이 신동엽을 불렀다. 하늘의 부름에 신동엽은 땅의 올림으로 당한 것이다.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에 내리는 생명의 아우성은 세월의 흐느끼는 서글픔이었다. 민중에 대한 연민과 분노에서 폭발되어 나온 “껍데기는 가라”의 외침은 육사의 거센 육성으로 그리고 휘모리 가락의 촉급하고 거칠면서도 힘찬 외침으로 땅과 산을 올리고 강물과 바닷물이 용솟음치게 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제3장 저항방법 비교
만해의 ‘님의침묵’에서 쓰는 저항방법과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에서 쓰는 저항법을 살펴보자.
3.1
만해는 1918년 9월에 창간된 만해 주재의 유심 이라는 시를 발표했다. 그당시 일종의 종합지인 유심지 창간호에 만해는 논설 ‘조선 청년과 수양’ 이라는 글을 실었고 시로서는 ‘유심’이라는 권두시를 실었다. 그는 세 백년 최대의 불교인이자 가장 완고한 불기의 민족주의자로 3.1운동 서명자 33인의 한 사람으로서 일제시대의 순국시인 이육사 윤동주와 함께 가장 저항적인 시와 사상을 남긴 작가라 불려진다. 만해의 많은 작품 중 처음으로 남긴 시 ‘유심’에서는 ‘심은 하시라도 하사하물에라도 심 자체뿐이니라. /심은 절대며 자유며 만능이니라’22) 라는 시의 구절이 있다. 이 시문은 만해의 시사상을 뚜렷하게 보여주며 3.1운동 자유의 목소리를 내기도 벌써 전에 만해는 ‘유심’이라는 작품을 통해 인간의 마음이 ‘절대와 ‘자유’이며 ‘만능’이라는 주장을 나타낸 것이다. 또한 만해 한용운은 항일 저항 시인으로서의 대표작 ‘님의 침묵’을 발표하며 일본에 억압받는 당시 조국과 민족의 예민한 영혼을 자신의 작품안에 고스란히 녹여냈다.
3.2
20년대 저항시에 반해서 신동엽의 시들은 ‘닦아라, 찢어라, 알리라, 가라’등에서 보듯이 대부분 청자지향적이다. 이것은 시인이 느끼는 연민과 분노를 독자에게 직접적으로 호소함으로써 보다 더 강렬한 감동을 전달하고자 한 것이다. 신동엽 작가인생의 대부분은 전통 시들로 그의 직접적 체험이 작품과 관련되어 있다. 역사적 현실에 대한 통찰의 결과와 이웃. 더 나아가 우리 민족에 대한 애정과 성실성을 나타내며 정신주의와 민족주의를 근간으로 한 그의 시정신이 그의 작품 곳곳에 드러나 있는 것이다. 그의 작품과 당대 모더니스트들의 작품을 비교했을때 더 선명하게 알 수 있다. 당대 모더니스트들은 그들만의 즐겨쓰던 문장이나 전통적인 비유와 상징을 꾸준히 사용했지만 신동엽의 시는 그들과 확연히 다름을 느낄 수 있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시어들은 대부분 민족의 토속어들이 직설적으로 사용되어졌다.
3.3
만해의 시 ‘님의 침묵’에서 ‘님’은 보편적으로 조국, 민족, 부처님, 절대자 로 풀이되고 있다. 하지만 ‘님’의 상징적 의미가 단순히 연인, 절대자, 조국뿐만 아니라 삼라만상에 존재하는 생명의 역동적인 존재들로 확대 되면서 더 깊은 상징성을 갖는 상징 시집으로의 한 지평을 넓혔다. 만해는 소멸과 생성, 이별과 만남, 현실과 초혈의 극복 과정을 ‘님’으로 상징화함으로써, ‘지금 여기’가 아닌 초월적 세계의 절절한 시적 염원을 노래했다. 이를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절대자의 모습을 시적으로 감지함으로써,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다’라고 하면서 주관적인 의지로써의 ‘님은 자기와 함께 있음’을 강조했다. 즉, 조국이 일본의 식민지 치하에 있지만, 시인 자신은 조선을 독립된 조국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또한 ’만해는 ‘당신을 보았습니다’ 라는 작품으로 또다른 ‘님’을 지칭하였다. 이 시에서 ‘당신’은 이 세상의 허위의식과 세속의 논리를 초월한 절대적 존재 그리고 조국 광복을 의미한다. 정확하게 ‘당신’은 고통과 절망의 시간, 상실과 슬픔의 시대로부터 벗어나 삶에 신념과 용기를 가질 수 있게 하는 희망의 상징의 하나 인 것 이다. 어려운 시대 상황이 강요하는 억압과 고통을 싸워 이겨나감으로써 올바른 역사전개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그 만의 확신을 이 시에 담은 것 이다.
저항시의 대표작 [껍데기는 가라]를 지은 신동엽 그리고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김수영은 이렇게 말했다. “시적 경제를 할 줄 아는 기술이 숨어 있고 세계적 발언을 할 줄 아는 지성이 숨쉬고 있고, 죽음의 음악이 올리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서 문명비평의 차원과 세월의 민요조에 육사의 절규를 삽입한 것 같은 아담한 면을 지니고 있다. 라고 언급했으며, 이 작품은 단순한 원칙을 고수하는 소박한 모사론의 한계에 빠질 위험성이 항상 잠재되어 있다고 했다. 또한 그는 분단에 따른 이데올로기 갈등과 대립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으로 한국 문학계와 순수시 참여시의 논쟁이 본격화된 60년대 문단에서 참여시 또는 민족, 민중시 영역을 구축하고 또 그에 걸맞은 시 작품을 보여 주었다는 데 그 의의를 둔 것이다. 이러한 특징은 그의 시론이 인류와 세계에 대한 생명의식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또한 신동엽은 시를 시인의 내면적으로 감상을 표출하거나 형식적인 기교가 중심이 아닌 인류와 세계에 대한 생명의 발현 그리고 인간 정신의 승화를 중점적으로 대하였다. 이러한 그의 입장은 평소 그의 작품에서 명백히 드러나 있었으며 민족이 고통받는, 더 세세하게는 한 인간의 생명이 달려 있는 남북 분단 상황에 주목하고 그 속의 부패한 정치를 질타하고 외세의 개입에 항의하는, 예언자적 역할을 작품을 통해 이루어 내고자 했던 것이다.
제4장 결론
우리가 시의 종류를 구분함에 있어 서정이니 서사, 또는 순수시 참여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러나 그를 나누는 기준이 객관적인 시의 분석을 통하기 보다 시인이 시를 바라보는 태도나 그가 가지고 있는 경향에 의해 결정지어진 경우가 많다고 여겨진다. 그래서 본고에서는 순수시의 대표격이라 일컫는 한용운과 참여시의 정수라 일컫는 신동엽을 비교하였다. 흑자는 순수시와 참여시는 양극으로 놓여 있는 것으로 인식하여, 두 시인이 비교할 수 있는 거라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서론에 보았듯이 이들은 비교할 수 있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서정성 또는 전통성이라 하였다. 주로 신동엽에 시에서 서정성을 발견할 수 있는가로 살펴보았지만, 신동엽은 군더더기 없는 시어의 사용, 소박성, 행의 의식적 배열, 전통적~향토적 소재의 사용, 과거 지향적 태도, 나아가 전통시의 가장 큰 특징인 자연 친화 내지는 자연 동화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기에 신동엽의 시들은 참여시 이전의 민중 속에 퍼져 드는 민중시일 수 있었다. 따라서 한용운, 신동엽은 읽는이로 하여금 쉬운 공감대를 형성하는 민중시인일 수 있었으며, 이런 공통점으로 비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비교의 자리에 필자는 그들의 대표시라 보이는 시[님의 침묵]과 [껍데기는 가라]를 놓았다.
두시 [님의 침묵]과 [껍데기는 가라]를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님의 침묵]에서는 ‘님’에 대한 존경과 겸양의 태도를 통해, 이시의 시인은 조국의 광복과 겨레의 행방을 실현하고 싶은 저항감을 알 수 있었다. 한용운이 다른 시들에서 보듯, ‘님’은 회자의 삶의 생존의 힘으로써 작용하기 때문에, 이 시에서 보이는 님에 대한 태도는 당연한 결과라고 여겨진다. 이런 회자의 태도는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님의 떠남’에 대하여 슬퍼 울기보다 존대와 겸양의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님이 행동에 변화를 주기바라기보다 님의 행위에 대하여 자신의 행동을 다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껍데기는 가라]에서는 ‘껍데기는 가라’라는 거부하기엔 명령을 통해, 단호함을 드러내고 있다. 흔히 순수시라 일컫는 [님의 침묵]에서는 인간은 영원한 자연을 지향한다는 의미를 전달하고 있고, 참여시켜 일컫는 [껍게기는 가라]에서는 시인의 의도처럼 마음의 동요를 느낄 수 있음에도 이러한 사실은 확인된다. 단지 두시는 앞서 보았듯 추구하는 세계가 달라서, 그에 따른 화자와 독자에게 수반된다 행동이 달랐던 것이다. 그 결과, 문학의 두 기능중에서 [님의 침묵]은 감동을 주는 기능에, [껍데기는 가라]는 의미 전달 기능에 더욱 비중을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두시인의 많은 공통점에도 시인이 각기 추구하는 세계의 차이로 인하여 구분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된다.